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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망명연습 |
1997년 동유럽의 한 국가 주재 미국 대사관에 브라질 여권과 도미니카 여권으로 세 명의 미국 입국 비자 신청이 들어왔다. 한 명은 여인 두 사람은 남자였다. 사진상 세 사람 모두 동양인이었다.
이름으로 보아 브라질 국적과 도미니카 국적으로 귀화한 한국인으로 추정되었다. 미국 대사관은 이 세 사람에게 비자를 발급했으나 나중에 추적한 결과 입국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입국 비자를 내어준 지 몇 달 뒤 미국 정보기관은 우연히 비자발급 대장에 붙은 사진을 조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비자를 발급받은 한 남자는 김정일 다른 남자는 비자금담당 비서 박모 그리고 여자는 애첩 정일선 (마카오에 별장을 갖고 있다)으로 밝혀진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후속 조사결과 박모와 정일선은 미국을 여러 번 들락날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위조여권으로써.
김정일은 진정으로 미국에 가려고 했을까. 이런 일이 있은 지 1년 뒤인 1998년 5월 김정일의 애처 고영희 (작년에 사망)의 여동생 고영숙(46세)과 그의 남편 박모(40대 후반)가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고영숙 부부는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던 김정일의 아들들 (김정철 김정운)을 뒷바라지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스위스 은행에 약 40억 달러의 비자금을 예치하고 있으며 레만 호숫가에 두 채의 빌라를 사두고 있었다.
김정철-김정운 형제가 살았던 빌라는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외교관 정일선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다. 고영숙은「정일선」이란 이름의 외교관 여권을 갖고 다녔다. 마카오에 별장을 가진 김정일의 첩도 이름이 정일선이다. 여러 명의 정일선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영숙의 남편 박모는 미국에서 정보기관의 관리 하에 살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했다. 김정일이 뉴욕 증시에 투자한 사실을 제보하여 이를 동결시키도록 했고 스위스 은행에 예치한 김의 비자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한다. 고의 남편 박은 엉뚱하게 들리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굉장히 불안해 하고 있다. 내가 나서서 그를 미국으로 망명하도록 주선할 용의가 있다.
북한의 대남공작부 출신 한 탈북자는『고영숙이 미국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김정일이 일부러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미국 측의 반응도 보고 자신의 망명 연습 삼아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 무렵 미국 정보기관은 북한의 조선민항 여객기가 뚜렷한 목적도 없이 손님도 태우지 않고 취리히 공항에 자주 오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잠정적인 결론은 김정일이 스위스로 망명할 때를 대비하여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도 몇달 간이나 유럽으로 나가 안 들어온 적이 있었다. 김정일은 권총을 곁에 두고 자다가 고영희가 치운 적도 있다고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증언). 김정일에 대한 암살 쿠데타 모의가 잇따라 적발되던 시기였다.
1997년 11월엔 노동당의 대외정보 조사부 (한국 국정원의 해외부서에 해당) 부장을 지냈던 권희경이 러시아 KGB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처형되었다. 그 몇 달 전엔 농업담당 비서 서관히가 안기부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청진 주둔 제6군단 장교들이 쿠데타 모의를 했다고 하여 집단 처형되었다. 김정일은 민족안전성 (사회안전부의 후신)에 특명을 내려 「심화조」를 조직 당군정민(黨軍政民)에 걸친 일대 숙청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약 3만 명이 적발되어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갔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을 때였고 황장엽 비서가 북한체제의 붕괴를 예감하고 한국으로 탈출했을 때였다.
이런 시기 김정일이 미국 입국 비자를 신청한 것이다.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망명 연습일 수도 있고 김정일의 부하가 미리 받아놓은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김정일의 친족들은 위조여권으로 해외를 여행 다니는 것을 즐긴다. 호기심이나 특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제주도를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북한 측에서 나오고 있는데 신빙성이 높은 정보이다.
1997년 전후에 미국 정보기관도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예감하고 김에 대한 망명공작을 추진했다고 한다. 망명 후보지는 스위스와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었다고 한다.
최근 다시 김정일 신변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면서 1995~1998년과 같은 위기가 재연되는 듯하다. 김정일이 일으킨 핵위기는 부시라는 상대를 잘못 만나 자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
일본인 납치에 대한 그의 순진한 고백은 일본 여론을 분노로 떨게 하여 일북 수교는커녕 일본으로부터 오히려 경제제재를 당할 처지에 몰렸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에는 전처럼 현금을 뜯어가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중국도 김정남을 친중파로 관리하는 등 김정일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중국이 북한을 침공하여 김정일을 쫓아내고 친중 과도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제 다시 김정일이 망명을 생각할 때가 된 것이다.
독재자의 최후는 두 가지이다. 히틀러처럼 자신의 소신에 따라 싸우다가 자살로 마감하는 경우와 차우셰스쿠처럼 도망가다가 잡혀 죽는 경우. 김정일은 집단농장을 방문할 때는 농장원들을 몽땅 창고에 감금시킨 뒤 호위병과 간부들만 데리고 시찰할 정도로 인민들을 겁낸다.
회식 자리에 가서도 술처럼 만들어 놓은 맹물을 마신 뒤 취한 척하면서 부하들끼리 어떻게 어울리는가를 관찰한다.
북한 주민 300만 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식탁을 대하고 가장 퇴폐적이고 변태적인 오락을 즐긴 그는 본성이 겁쟁이인 것이다. 겁을 공포로 포장하기 위하여 그는 허세를 부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비겁과 의심과 불안이 그를 학살자로 만들었다.
이런 김정일이기에 그에 대한 망명공작은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고 달아날 구멍을 내어놓으면서 몰아가면 성공할지도 모른다.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이사
※ 이 기사는 월간조선 2월호 별책부록 조갑제의 최신정보파일 에 실린 글로써 월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실어 보았습니다.
2005.1.18.자 월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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