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1-5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제목 : 신앙가정의 갈등
인간과 인간간의 유대나 情은 그렇게 공고하거나 강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인간관계가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가정의 유대나 情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정의 평화가 쉽게 무너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죽거나 상처받았을 때 아이들은 힘든 생활에 처해지게 됩니다.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되어 가족이 무너지는 때도 있습니다. 밖으로 전쟁 사고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믿는 신앙의 가정에서도 가정의 평화가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요셉의 신앙가정에서는 가정의 평화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조차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화의 가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야곱은 12아들 가운데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본문에 언사가 불평하였다는 말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 샬롬이라고 먼저 인사를 쉽게 나눌 수 없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요셉이 꾼 꿈 때문입니다. 밭의 곡식이 한 단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해와 달이 자기를 보고 머리를 숙였다. 이는 무리의 왕(지도자)이 된다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요셉은 꿈 이야기를 득의양양 형들에게 자랑함으로써 아버지도 머리를 숙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으로서는 너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둘째 37:3에 노년에_얻은 아들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었더니_ 라고 하여 특별히 옷을 지어 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채색옷은 왕의 딸 공주가 입던 옷으로 요셉이 야곱 집안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옷 때문에 형들을 더욱 분하고 화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어리석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야 하는데 왕족이 입는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기에 요셉은 교만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형들의 화 아버지의 어리석음 형들의 시기하는 죄 요셉의 교만 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것입니다.
37:13-14(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에서 아버지는 형들과 양떼들이 잘 있는지를 여부를 알아보도록 요셉으로 하여금 헤브론에서 100Km 떨어진 세겜으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 한 30Km 가다 길을 잃었으나 어떤 사람을 만나 간신히 찾아가게 됩니다. 형들은 동생을 죽여버리자 하고 그가 꾼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하여 하나님의 주신 꿈을 망각하고 방황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는 방황하는 사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창세기 37장에서 반복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가정이 죄와 어리석음 약함에 의해 무너져내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1절에서 형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겨 옷에 수양을 죽여 피 묻혔습니다. 이 채색옷은 어리석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편애의 상징인 것입니다. 왕족들이 입는 이 옷으로 인해 요셉은 교만해졌고 형들은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형들은 죄를 덮기 위해 수양을 죽여서 피에 적신 채색옷을 아버지에게 가져가게 됩니다. 33-35절에서 피묻은 옷을 보고 아버지는 크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 야곱도 형 에서에게서 축복을 뺏은 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가정에서조차 혈육간의 사랑이 쉽게 무너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심을 회복해야만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죄는 바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지 않는 진실하지 못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진심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에 있습니다. 24절에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으로 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26절에는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역사하고 계심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보고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어렵고 비참한 인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으면 의미 있고 희망 있는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신앙적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요셉은 학대받고 팔려 가는 억울한 삶 속에서 참된 믿음을 회복하였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체험하고 뜻대로 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고린드후서 1장8절이하에서는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가정의 평화가 깨어지거나 성도끼리 조차 샬롬이라는 평화의 인사를 나눌 수 없어 절망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말없이 소리 없이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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