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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9일 주일] 내일을 위한 부인

내일을 위한 부인(否認)

마16:21-25



저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동경교회 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정말 교회다운 아름다운 모습을 이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평생을 살기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교회의 본질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아시다 시피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즉 아름다운 교회를 보여 주는 것은 곧 교인 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에 모이는 사람이란 본시 완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고 또 제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는「지은 죄가 많아 교회에 나가기가 어렵다」는 그런 말은 통하질 않습니다. 지은 죄가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는 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의 신분이요 세상 적으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조금만 바르게 생각해 봐도 우리의 이 모습으로는 아름다운 교회를 세상에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교회가 교회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세상의 지탄을 받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추한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욕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어차피 교회다움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냄새나는 죄악들이 있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과거가 있으며 또 손가락질 받을 수밖에 없는 많은 실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해 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본래 죄인 중에 괴수였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교회를 완성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인 된 우리의 모습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 무엇으로 변화되는 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죄인이요 구제 불능의 인간들이라 실수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뿐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생활을 할 때 우리에게 조금씩 변해 가는 그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완성된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죽는 날까지 노력을 해도 그 완성된 모습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도 그 완성된 모습을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죄인 된 우리가 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화되어 가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변하기를 원하시는가? 저는 이 시간에 성경 전체를 기초로 해서 우리가 변해가야 하는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교회공동체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 변해가야 합니다.


거룩한 공동체라는 것은 교회 전체가 조용하고 단정해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교회가 특권층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 교회는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교회가 거룩해 지기 위해서는 교회는 거룩한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영성이란 방언을 하는 것이나 기도를 잘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즉 입이 거룩해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입이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 거룩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그 거룩하지 못한 부분들을 잘라 내야 합니다. 그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마7:21) 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2. 교회는 보편적인 공동체로 변해가야 합니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인종과 계급 교파를 초월해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일본인과 재일(在日) 그리고 New comer 가 서로 다른 시각을 자져서는 안 됩니다. 학력과 출신 문화와 계층의 편견을 갖고 있으면 그것은 주님의 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보편성을 상실해 나갈 때 교회는 세속화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선교적 전략과 목표는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사람들은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이 동경교회는 부요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따로 모여서는 안 됩니다. 재일(在日)과 New comer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구분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역에 따라서 하는 일에 따라서 우리의 사랑이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3. 교회는 친교의 공동체로 변해가야 합니다.


여기서의 친교라는 것은 세속적 개념의 친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함을 돌리고 함께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교회가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서의 친교는 단순히 서로 사귐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친교는 우리 서로가 희망 가운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천국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낙심한 자를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주고 감싸주는 모습으로 인해 서로의 모습에서 천국을 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주일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이런 천국의 인사를 하십니까? 얼마나 많이 서로를 위로하십니까? 서먹서먹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먼저 다가가십니까?

우리 교회는 아시다시피 이제 공간적으로는 한계가 왔습니다. 주일날 주차를 하는 문제와 교육부서나 성가대에서 방을 하나 쓰는 문제 식당에서 점심 한 끼를 먹는 문제들이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런 문제로 인해 많은 부서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잘 압니다.

여러분이 주일날 예배 한 번 드리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그 노력에 비해 교회가 많은 배려를 해 주지 못한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래서 목사로서 여러 교인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 한가지만큼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는 것입니다. 이곳 교회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의 모습 속에 조금씩 천국을 간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계층간 부서 간 교제가 힘들다고들 합니다. 재일(在日)과 New comer간에 친교가 힘들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복잡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핑계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보여줄 수 있는 도구가 못 되기 때문입니다. 내 스스로가 변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서로 천국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교의 공동체가 되어가야 합니다.


4.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로 변해가야 합니다.


이 땅의 권세는 지위와 명칭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권세는 섬김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상반된 생각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더 높으냐?」 서로 싸웠고 제자들의 어머니는 「주여 내 아들을 하나는 주의 오른 편에 하나는 주의 왼편에 올려 주소서」 하면서 자리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크고자 되거든 남을 섬기라「(막10:43) 는 한마디 말씀으로 저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교회의 교회됨은 섬김에서 나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자를 섬겨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을 섬겨야 합니다. 중직자(重職者)는 평신도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해 가는 모습이 우리에게서 나타나지 않을 때 이 동경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는 그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렇듯 거룩성 보편성 친교 섬김의 모습으로 변해 갈 때 그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한 것입니다.

목사로서 목회를 해 나가기가 가장 힘이 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 죄인 된 우리가 모여 하나씩 하나씩 변해감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변해 가는 것이 막힐 때 목회자로서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목사를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목회하기가 힘든 것이 아니라 정말 세속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천국의 모습이 되어가지 못하고 발목을 잡힐 때 목회는 힘이 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하게 되어가야 합니다.
편견의 울타리가 없는 보편적인 모습으로 변해가야 합니다.
천국의 모형을 제시하는 친교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섬김의 모습이 위로부터 우리 모든 교우들에게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모습에 우리가 마땅히 도구가 되지 못할 때 그 때부터 교회는 세속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교회의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예배만 열심히 참여하면 우리가 다 이렇게 변화되겠습니까?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면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으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특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제자 된 우리들에게 오늘 성경본문을 통해 그 방법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대체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십자가는 달리 존재하는 무거운 고통이나 고난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는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사실 하나는 그것은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라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부인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1. 오늘의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갖고 있는 위치와 오늘 내가 갖고 있는 편안함 그리고 오늘의 내가 갖고 있는 신앙에 대한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되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즉 나의 내됨을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나의 신앙을 부인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중 수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시험을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그가 성령을 받기 전이었다고 해도 예수님의 뜻을 그렇게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베드로의 말과 행동을 보면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아끼고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 애썼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베드로도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 고 한 말씀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간혹 사람들을 보시고 하신 욕들을 보면 그 종류가 꽤 됩니다. 제일 약한 욕으로는 「이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아!」(눅11:40)하는 것이 있고 「믿음이 없는 자들아!」 「회칠한 무덤아!(마23:27)」등도 많이 쓰셨습니다. 좀 강도가 높은 욕도 쓰셨는데 그것은 「독사의 자식들아!」(마12:34)라든지 오늘 베드로에게 한 것 같이「사단아!」 라는 책망인데 이런 예수님의 심한 욕 중에 제일 강한 것은 바로 「사단」이라고 칭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가장 강한 톤의 욕을 아이러니칼하게도 바로 제일 사랑했던 베드로에게 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의 신앙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일 울고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해도 우리는 언제든지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사단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가 있는 것이고 예수를 넘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 신앙을 부정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부인해야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실 수 있도록 우리를 자꾸만 가려야 합니다. 나를 죽여야 합니다. 지성소에서 죽임을 당하고 각이 뜨이고 내장이 다 태워진 그 희생제물이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레1:12)

신앙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죄인임을 깨달아야 하고 교회에서 중한 직책이 맡겨지면 맡겨질수록 더욱 나를 죽여야 하며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낮아지려는 마음이 늘 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오늘의 동경교회를 부인해야 합니다.


동경교회는 약 100년 전 창립 이래 꾸준히 이 땅의 복음을 지켜왔고 이 땅의 한국 사람들을 지켜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한인 사회에서 그리고 총회에서 주목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인 수적으로나 한해의 예산으로나 또 현재의 성장률에 있어서 오늘날 침체를 거듭하는 다른 교회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성장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외형적인 것보다는 교단에서 우리 교회를 보며 하는 말이 더 관심을 끕니다. 총회를 이끌어 가는 교회 어머니 같은 교회.....

여러분 결코 교회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이만큼 큰 교회라는 둥 한 해 예산이 얼마라는 둥 일본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둥 교회학교가 잘 되어 있다는 둥 많은 교회를 개척한 교회라는 둥..... 등등. 이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들이지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이는 아이를 낳고는 그의 손가락 발가락이 다섯 개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으면 교인의 수와 돈을 자랑합니까?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으면 교회의 제도를 자랑합니까?

교회의 자랑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 자랑하고 싶은 욕심 안주하고 싶어 하는 욕심 대접받고 싶은 욕심들을 다 십자가에 못 박고 나와 이 교회까지도 부인할 때 그때부터 진정 교회는 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더 철저히 죽여야 합니다. 우리의 소리를 더 없애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인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의 지도를 펴놓고 한 가운데를 짚어보면 서안(西安)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그곳은 2200년 전 진나라 시황제가 천하를 호령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지난 1974년 봄 재미있는 일이 하나 벌어집니다. 어느 농부가 봄 가뭄에 지쳐 우물을 파기 시작했는데 한참을 파 내려가다 보니 곡괭이 끝에 뭔가가 걸렸습니다. 이상히 여겨 파보니 옛 장수의 얼굴을 한 흙으로 만든 인형인데 그 인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나왔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진시황제의 무덤인데 진시황제의 능은 이렇게 해서 발견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장수의 모습을 한 사람크기의 흙으로 만든 토인들을 병마용(兵馬俑)이라 하는데 지금까지 다 발굴하지 않고 있습니다. 꽤 오래 전에 제가 약7000개 정도까지 발굴했을 때의 그 수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니 무척이나 많은 듯싶습니다. 현재는 발굴이 중단된 상태인데 얼마가 더 나올 런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 흙으로 만든 병마용 중에는 정말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시황제가 죽으면 자신도 같이 죽어 죽어서도 왕을 모시겠다고 하는 충성된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런 신하들을 신청 받아 그들을 중심으로 왕을 지키는 군대를 흙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죽여가면서 까지 주군을 지키려고 하는 그 충성된 모습이 그 병마용에는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한 나라의 왕에게 충성을 할 때도 자신을 죽여 왔습니다. 자신의 주인 앞에서 자기의 뜻을 굽힐 줄 알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의 머리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 나와 우리 교회의 미래는 아름답게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의 나를 부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동경교회를 철저히 부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나와 이 동경교회는 정말 천국의 모형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아름답게 아름답게 변해 갈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설교 후 기도〉

나의 나됨은 내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의 교회됨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이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주님 나의 노력과 우리교회의 능력은 주 앞에서 모두 부인되게 하시고
오로지 주님의 역사만이 이곳에서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부인하고 나를 더 철저히 죽임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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