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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13일 주일] 일어나 걸어가라

요한복음 5:1~18
김군식 목사

생각이안나 기억이 잘 없습니다마는 7~8년 전에 「인생의 친척」이라는 일본소설이 발간되었습니다. 주인공은 두 아들을 가진 가정주부입니다. 큰 아이는 날때부터 머리를 다쳐 뇌성마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아이는 낳을 때 건강했습니다마는 어릴때 교통사고를 당하여 하반신이 불구인 아이가 되어버렸습니다. 휠췌어에 신세를 져야하는 그런 몸이 되었습니다. 축복으로 받은 이 두 아들이 다 병신인 몸을 갖게 된 것입니다. 가정이 비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부관계가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신후 알콜중독자가 되어 결혼도 파괴가 되어 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두 아들들이 서로 의논을 하여 자살을 해 버렸습니다. 자기를 죽여 버린 것 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되는 이 가정주부 정말 삶이 있을까? 살아 갈 수 있을까? 이런 곳에 구원의 길이 있을까? 욥기에 제기된 문제입니다. 「인생의 친척」이란 이 제목은 원래는 헬라어에서 온 말입니다마는 뜻은 인생의 고통 고난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주신 성경말씀 38년간 움직이지 못하는 병고를 지닌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사람의 사건 절대로 이 세상과 예외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병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태어날때에도 고생입니다. 나와서 살아 있을 동안도 많은 고생을 합니다 죽을때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이처럼 삶이라는 것은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이 있습니다마는 원래는 자비의 집 긍휼의 집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베데스다의 그 모습 그 사항 그 행실들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실상의 척도라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들 자신 가정 연못가에 누워있는 사람들 눈이 안보이는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들 이 세상 그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 자비의 집 긍휼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이 연못에 많은 병자가 살고 있었습니다마는 그기에는 구원이 없었어요.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성경말씀에는 「이런 세상 이런 사회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연못에서의 구원을 터득하고 그 구원을 체험해야 합니다.
7절에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이 움직일때 넣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경쟁하는 세상입니다 이 베데스타 연못도 경쟁하는 사회입니다. 물이 움직일때 누가 먼저 물에 들어가는가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이웃이 아니고 경쟁자이고 원수입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연못에 왔을 때는 유대인의 명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못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명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에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회로 부터 소외받고 잊어버려지고 아무도 기억하여주지 않는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며칠전에 교육방송에서 세타가야에 사시는 분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84세의 어머니가 500Km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사시는데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한주간에 한번씩 자동차를 타고 갔다 온다고 합니다. 자동차로 6시간 걸려서 어머니를 4시간 돌보아 드리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동경교회에 다니시는 연세많은 분들 주일은 기억하고 있지만 거동이 힘들고 교회까지 태워주는 분이 없어서 주일날 교회에 나오고 싶어도 못나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동차 타고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마는 교회에 태워다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베데스다 연못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처럼 진정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비의 집이라고 하면서도 자비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의 원수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자비가 없었던 자비의 집에 주님이 오심으로서 진짜 자비의 집 사랑의 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자비의 손을 대시는 그 순간에 자비의 집이 된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 연못에 오게 된 것입니다.
38년동안 누워있던 병자가 어떤 구원을 받았습니까? 자기 아픈자리 고통의 자리 괴로운 자리 보잘것 없는 자리에 주님께서 오셔서 자비의 손길로 어루만지시므로써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주님의 그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어요.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이 분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 여러분! 다 알고 있지않습니까? 받고 있지않습니까? 죄사함입니다. 또 동시에 육체의 치료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14절에 「예수께서 성전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왔으니…」 죄사함뿐만아니라 육체적인 것도 나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보이지않는 내적인 마음의 상처뿐만아니라 내외적 전체의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외적인 것뿐만아니라 내적 즉 우리의 마음 전체를 다 고침을 받고 다시 새로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릴때마다 주님의 자비 자비로우신 주님을 우리가 만나야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 우리의 마음 전체를 고침받고 힘을 받는 예배가 여기서 이루어 진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위에 죄사함을 받았는데 육체의 고침을 못받았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아주 유쾌한 광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만져주셔서 손을 대어 주셔서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주의 자비 주의 사랑 주님의 은혜 그 은혜를 힘입을 때 병도 죄사함도 받을 수 있다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죄 사함과 병고침 이 두 가지가 주님안에 예배드리는 이 순간에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이제 나았다고 그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이제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일어나 걸어가라.」 곧 일어났습니다. 걸어갔습니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때 건성으로 예배를 드리면 절대로 안됩니다. 찬송을 하나 부를때에도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찬송을 부를때 내 몸도 낳습니다. 죄사함도 받습니다. 여기서 죄사함과 육신의 건강을 얻고 우리가 또 한주간 이 세상에 나아가서 살아야됩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고통과 괴로움 상처를 입고 다시 또 이 성전에 와서 또 다시 예배드리므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육신의 건강을 얻어서 세상에 나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갈때까지 우리는 이것을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 14절에 「보라 네가 나왔으니…..」 나왔어요. 여러분! 얼마나 귀한 말씀이 아닌지 모릅니다. 「네가 나왔다」라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걸어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는 주일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신기한 것은 「일어나라」 하시는 말씀은 주님께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부활」과 똑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죽음을 이기시고 일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일어나셨다」라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네가 나았으니」 이말을 우리가 들었으면 입에서 뿐만아니라 마음속 진정으로 우리가 「아멘」해야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아가서 살 수 있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분!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사도바울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까?
은혜가 부족하여 사도바울은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베데스다 연못에 있었던 그 38년된 병자에게 「네가 나았다」라고 하시는 말씀과 사도 바울이 그 아품속에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과 통합니다.
두 말씀 다 은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38년간의 그 병자도 은혜로 말미암아 그 병이 낳았습니다.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여러분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병이 아닙니다. 죄가 아닙니다. 인생의 불행이 사도바울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사도바울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기때문에 이 병중에서도 그 가시때문에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네 은혜가 족하다」라는 주의 말씀으로 그 가시를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은혜와 사랑의 능력이 부족하여 사도바울이 병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능력을 맛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나에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늘 봉사할수 있었다」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뇌성마비 시인 미시노 겐타로라는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소학교 3학년때에 모기에 물려서 뇌성마비가 되었습니다. 시집을 한권 내었습니다. 참 은혜가 됩니다. 33년전에 자기가 꿈에도 생각지 않던 뇌성마비에 걸렸을 때 실은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 병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입기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감사로 표현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녁마다 자기에게 엄습해 오는 그 고통을 생각할때마다 견딜 수 없습니다마는 그러나 아무도 자기를 「예수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고백할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주의 것이다. 주가 나를 사랑하셨다.」 이것이 미시노 켄타로의 고백입니다.

이제 끝으로 왜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쳐 주셨는가?
무엇때문에 이 병자가 나왔습니까? 왜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은혜를 받게되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죄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범치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향상 깊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주님을 모르는 척한다」는 것 이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주를 모르는 사람처럼 살지아니한다. 이것이 죄를 짓지않는 우리의 삶입니다. 무슨일을 하던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산다는 것 다시 말하면 주를 위하여 나의 몸과 마음을 바쳐서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세상속에서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고 여러가지 일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모든 삶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으로서 신앙고백을 하면서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짓지않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고쳐주시고 고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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