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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20일 주일]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마가복음 10:46∼52
김군식목사

몇 해전 어느 목사님이 「목사의 소원」이란 책을 남기신 적이 있습니다. 목사를 포함하여 여러분 각자가 나름의 소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또는 남편 아내 경영자 노동자로서의 각각의 소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또한 인간의 소원을 조장하고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소원은 매우 애매하고 뭔가 알기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리라는 말씀을 듣고 단 한가지 소원으로 하나님을 아는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를 구하였다고 합니다.

맹인이며 거지였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예리고를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단 한가지 소원을 외쳤습니다. 시끄럽다는 주위의 꾸짖음에도 더욱 소리 높여 주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쉽게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마음속으로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막는 손이 있음을 알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막는 유혹 의심이 그것으로 기도가 헛되다고 하여 단념하게 하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祈福宗敎가 아니며 제멋대로 믿으면서 욕심을 채우려는 종교는 아닙니다. 하지만 언제나 고상한 것만을 기도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그것이 물질적 육체적인 것이든 내면적이든 것이든 간에 도움을 계속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성서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이 물질적이든 육체적이든 또는 건강의 문제이든 나를 도와달라는 기도가 있어서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바디매오는 많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오직 볼 수 있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주여 나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있는 그대로의 믿음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시편 50장 15절의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의 말씀은 언뜻 오늘 마가복음 말씀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실은 관계가 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 하나님은 환난 날에 내가 너를 건지리라. 즉 어려울 때 나를 부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에 실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우리들의 소원이 있는 한편 하나님도 우리에게 소원이 있다고 믿습니다. 소원이 있어도 이는 기도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나를 건져주십시오」 라는 소원이 실제의 기도로 표현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200년의 근대사회는 의심하게 하는 시대입니다. 독일의 어떤 학자는 인간의 소원이 종교를 만들어내었다고까지 했습니다. 사람의 약함이 소원을 만들어내고 기독교를 만들었다는 것이 세상 진리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의 진리에 불과합니다. 간절히 소원하여 성령이 생기고 교회가 생긴 것이 아니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는 하나님의 소원이 있고서야 성령이 생기고 교회가 생기며 사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먼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빈슨크루소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사공으로 나서 표류하게 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 절해고도에 표착하여 20년을 홀로 살았습니다. 흔히들 어린이를 위한 소설이라 알려져 있으나 실은 많은 성서적 시사점이 있는 책입니다. 이는 애굽의 감옥에서 보낸 요셉과 닮아 있습니다. 요셉이 감옥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형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빈슨크루소도 쓸쓸한 고도에서 기도와 함께 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섬에 도착하여 열병에 걸린 로빈슨크루소는 배에서 가져온 성서를 꺼내 읽어가는 도중 시편 50장 15절을 읽고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 주십시오. 환난 날에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앙을 회개하고 난파된 배에서 살아 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나를 회개시켜 주십시오. 그가 20년이상이나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참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마음에 갖고 있는 소원을 기도를 통해 주님께 부르짖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길이요. 삶의 힘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부르짖으라 했을까요. 우리는 아무 자격도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유일하게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려울 때 도와줄게 말해준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정작 어려웠을 때 그를 찾지 않았었다고 나중에 얘기해 주었다고 합시다. 그 친구는 배신감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 제목으로 부르짖지 않으면 하나님은 괘씸하다 섭섭하다고 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8절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은 아니지만 목사로서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줄곧 기도해 왔습니다.

시편 27장 4절에서 다윗은 단 한가지 소원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소원하였습니다. 마가복음의 소경 바디매오는 온전히 주님께 소원을 쏟아 부었습니다. 눈이 보이게 되는 것보다도 52절에서처럼 믿음으로 보고 길에서 좇아 예수님과 함께 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간다. 무슨 길.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게 되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 주를 따르는 길에 인생의 참된 의미 기쁨 보람이 주어집니다.

모두들 건강 참된 친구 보람 대학합격 남편지위 향상 등을 소원하지만 예수님이 가는 길을 같이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부르고 맡기고 예수님의 자비 긍휼 아래 함께 가는 인생. 주여 주여. 부르짖는 기도의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내 안이나 밖으로부터 각종 방해가 있습니다. 사탄의 역사에 굴하지 않고 용기 도움을 받아 마음속의 소원을 솔직히 내어 놓고 걸어가는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스위스의 한 심리학자는 하나님을 불신하며 기도에 대한 실험을 하다가 그 후 45년간을 기도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놀랍게 응답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소원이 있지만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가는 길을 나도 따라가는 생활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까지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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