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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3일 주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2)

시119:33-40




옛날에 비해 오늘날은 왜 천재가 적은가? 에 대하여 여러분은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옛날에는 분야별로 훌륭한 천재가 많이 나왔었습니다. 철학 부분에는 순수이성을 비판한 <임마누엘 칸트>라든지 변증법을 말한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같은 천재가 있었습니다. 문학부분에도 세계의 어느 대륙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할 만큼 영국이 자랑하는 <셰익스피어>가 있었고 러시아가 자랑하는 <도스토예프스키><톨스토이>등은 인간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한 천재들이었습니다. 문학부분뿐 아니라 음악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헨델>이나 <바흐> 그리고 <모차르트>같은 천재가 새로운 음악의 체계를 세우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으며 미술부분에서는 <미켈란젤로> <다빈치> 같은 사람의 활략이 두드러집니다. 수학 부분도 그렇고 과학 부분도 그렇습니다. 거반 모든 부분에서 천재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활략이 많이 나타난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오늘날에 와서는 옛날과 같은 그런 천재를 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식이 부족하여 잘 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날에는 옛날에 비해 그런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적은 것 같습니다. 물론 현대의 지식의 정보나 우리 개개인이 아는 지식의 양은 옛날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옛날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옛날의 천재들에 비해 많은 업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에 대하여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식인 중에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사상가 <레이몽 아롱>은 약간은 재미있는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날에 사람들이 많은 정보를 갖고 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 사람들에 비해 천재성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전기의 발명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전기를 발명하면서부터 사람들의 천재성이 떨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이 이론에 대하여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전기와 천재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까?

레이몽 아롱은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전기를 발명하면서부터 저녁과 밤 시간이 바빠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해가 지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는 긴 긴 밤 시간을 촛불을 켜 놓고 많은 생각을 하였는데 현대의 사람들의 생활 문화는 오히려 저녁과 밤 시간이 더 바빠졌다는 것입니다. 밤도 낮같이 계속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또 매일같이 사람을 만나 교제해야 하고 식사도 같이 해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하고 TV를 시청해야 하고... 여러 가지 계획들 속에서 바쁜 밤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낮이 바쁘십니까? 저녁이 바쁘십니까? 좀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현대인에게 있어서 밤 시간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레이몽 아롱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이제 아실 것입니다. 바로 집중력입니다. 조용한 밤 시간에 깊은 사색을 하면 거기에서 창조적인 힘이 생긴다는 설명입니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옛날의 천재들에 비해 오히려 많이 부족한 것은 바로 집중력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천재의 가능성이 더 많은 현대인들이지만 천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싫으나 좋으나 밤 시간에는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인간 사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다 준 임마누엘 칸트는 당시 프러시아의 조그마한 마을 퀘니힉스(Kalininggard)에서 태어나서 80년 동안 살면서 그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시골 조그마한 마을에서 평생을 세상구경 못하고 살았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꼭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야 많은 지식을 얻고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집중력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집중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칸트는 잘 말해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집중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분야에서 필요합니다. 특별히 신앙에는 더욱 더 필요합니다. 신앙에 바르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잘못된 길로 빠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은 신앙에서도 집중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시편 중에서도 제일 긴 시로 알고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시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시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쓰여 진 것을 알면 좀 더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시편의 제 5권인 107편부터 150편 까지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완성된 시입니다. 즉 바벨론 포로기의 경험이 시의 내용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경험이 하나씩 하나씩 나타나는 시편의 시들은 포로기 이후부터는 절박하고 간절한 내용으로 변하게 됩니다. 어려운 환경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진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백성들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바벨론 포로기 때의 삶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자신들이 어떤 고생을 했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는 때입니다. 그것은 시간적인 면으로도 집중할 수 없는 것이고 상황적인 면에서도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시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포로는 이민이 아닙니다. 이민이 아니라 노예입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서 혹독한 사역에 동원되었습니다. 바벨론 도시의 외곽 도로를 건설했어야 했고 건축과 수로를 파는 데에 동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활의 유일한 기쁨이라고는 단지 잠자는 시간과 쉬는 시간뿐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과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시128편).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자신들이 당하는 많은 괴로움 때문에 바벨론 강가에 앉아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시137).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상황의 아픔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히려 하나님께 더 나아가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한 결과로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뼈저리게 깨닫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시대 그 어려운 기간에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통과 피곤뿐이었으나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께 집중하였습니다. 고통과 피곤 중에 하나님께 승부를 걸었던 것입니다. 단지 열심과 시간을 할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살 길이 없기에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지조>니 <일편단심>이니 하는 옳다고 믿는 것은 흔들리지 않고 지켜가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요즘은 사군자(四君子)가 사람들의 눈에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지만 우리 선조들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은 한 겨울이 되어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세한지송백(歲寒知松柏)이라 말합니다. 무엇인가 기치를 소중히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요즈음처럼 사회 현상과 제도 속에 인간이 파묻히고 마는 상황에서 바른 것을 향하여 중심을 잡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장 어려운 고통의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36절의 말씀은 그 마음을 잘 나나내 주고 있습니다.

시119: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이 말을 오늘날의 말로 정확히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내 마음은 잇속에 기울이지 않고 당신의 언약으로 기울게 하소서

우리를 바르지 못한 삶으로 인도하는 많은 유혹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승부를 거는 것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바른 사람을 살 수 없기에 세상의 잇속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나님께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바로 하나님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쁜 기준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도록 세상의 잇속대로 잣대를 삼아 살아가지 않도록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바로 바른 기도인 것입니다. 자꾸만 기울어지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바로 세워 놓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정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른 곳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려는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간절한 마음을 시119:33-34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시119:33-34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119:147-148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무엇을 말합니까? 새벽기도에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까? 심야기도에 나와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도저히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는 포로기 그 고통과 피곤 중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새벽이고 밤중이라는 표현입니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자신이 살 수 없기에 시인은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낮에는 전혀 시간이 없으십니까? 포로생활 같이 그렇게 고달프고 괴로운 고통이 있으십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꼭 새벽에 나오지 않아도 꼭 밤을 새우지 않아도 하나님께 더 쉽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집중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인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서 남의 집을 잘 방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같이 심방을 하는 목회자들은 일본사람에 비해 꽤 많은 집들을 방문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일본의 주택에 대하여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월세가 얼마인지 회사에서 어느 위치이면 어느 정도의 집에서 사는지를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심방을 다니다 보면 넓은 집도 방문할 때가 있고 또 좁은 집도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집이 좁은 것을 부끄러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동차가 작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것들로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들은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으로 여러분들의 부끄러움을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 온 결과가 좁은 집 작은 차 좋지 못한 건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것으로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세상에 휩쓸려 살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가치관에 집중하여 살아 온갖 죄악과 부정을 일삼고 불의와 타협하여 생활해온 우리의 삶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제 나이 때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저는 참 가난한 사람입니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지금도 돈을 모으는 대로 부모님을 드려야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돈이 없다는 것을 한 번도 부끄러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돈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돈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돈이 없음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부끄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가끔 기도할 때에 저의 부끄러움이 생각나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가 있는데 그 때 제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만큼 부끄러운 것은 집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늘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죄를 지으며 살았던 것이 늘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내 자신을 믿고 살다가 실패를 맛 본 것들이 늘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경교회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기도는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형식의 문제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집중력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 집중하는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면 새벽잠에서 깨어나서라도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밤을 새서라도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기울어져 가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께 집중함으로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게 집중하여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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