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청년 자매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이 <온유>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교인들이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때 성경적인 이름을 많이 붙입니다. <사무엘> <에스더> 같이 성경의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붙이는 경우도 있고 <은혜> <하은/하나님의 은혜>이 같은 이름도 많이 지어줍니다. <온유>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저도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이름을 <온유>라고 지으려고 했었습니다. <오온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정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셔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의 <정현>이는 하마터면 <온유>가 될 뻔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그 <온유> 청년을 볼 때마다 참 좋은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청년은 자신의 이름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성격이 좀 활달한 편인데 주위 사람들이 이름같이 좀 온유해지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그냥 장난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자라면서 자꾸 듣다 보니 기분이 몹시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 하고 고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름은 <온유>인데 전혀 온유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격을 바꿔야 합니까? 이름을 바꿔야 합니까? 아니면 그대로 살아야 합니까? 분명 온유라는 이름은 참 좋은 이름인데 그 온유라는 단어의 뜻 때문에 그 청년은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유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마음씨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또 거칠어서는 안 되며 시끄러워서도 안 되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전적 의미를 본다면 온유라는 청년은 분명 이름과는 거리가 먼 성격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녀의 고민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어느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부족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내>와 <온유>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인내가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인내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속히 주시옵소서!」
그런데 온유한 마음이 없다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많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온유한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제가 아는 <온유>라는 청년이 자신의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것 두 가지 모두 <온유>라는 말의 뜻에 대한 이해를 사전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유 -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 이것 때문에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온유를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 하는 온유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온유의 의미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성경에서 온유했던 성품을 가진 사람을 찾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온유한 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면 그 온유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온유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온유한 성품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유한 자 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 뿐입니다. 그는 바로 모세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가리켜 온유한 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모세는 이 땅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한 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정말 온유한 사람일까요? 모세가 정말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고생을 할 때 어느 이집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춘 사람입니다(출2:12). 또 시나이 산 위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고 하나님께서 직접 돌에 새겨 주신 십계명 돌 판을 갖고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상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고는 그 돌 판을 던져 깨뜨렸던 사람이었습니다(출32:19). 또 그것도 모자라 그 금송아지를 불살라 금가루를 물에 뿌려 그 물을 백성들에게 마시게 한 사람이었습니다(출32:20).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성격인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이런 몇 가지 사실만 놓고 볼 때 모세가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온유라는 말이 모세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세의 성격은 온유하다 라기 보다는 오히려 불같은 성격 참지 못하는 성격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런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제일 온유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평상시의 모세의 모습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온유한 점이 많이 나타나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잘 못 알고 평가를 내리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온유라는 단어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라는 단어의 뜻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유라는 말을 사전적인 의미로 해석을 해서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온유가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자가 땅을 축복으로 받는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11절에 그리고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의 말씀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시37: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온유라는 말을 우리가 이해하는 말씀대로라면 성격이 좀 조용하고 마음이 따뜻하면 모두가 땅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땅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부드러운 성격이면 땅을 축복으로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온유를 그렇게 이해한다면 성경의 말씀은 맞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온유의 개념에 대하여 더 정확히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는 바로 시37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3절).
삶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라는 것입니다(3절).
하나님 때문에 늘 즐겁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4절).
우리의 인생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5절).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으라는 것입니다(7절).
이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시37:3-7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온유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내 뜻을 감추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한 것을 말합니다. 잠잠한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성격이 조용해서 마음이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잠잠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 보다 더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보다 더 정확해서 그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감추고 죽이는 것이 바로 온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온유를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바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이고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땅 부동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개념보다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이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악한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않는 것(1절) 그것이 쉬운 일입니까?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는 것(8절) 그것이 쉬운 일입니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해하려는 사람을 보고 참는 것 그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라고 하십니다. 불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갖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바로 <온유>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온유>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유>입니다.
그러고 보면 실제로 모세는 하나님의 평가대로 온유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목자였지만 담대하게 이집트의 바로 왕 앞에 나갔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어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을 때 모세는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을 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는 팔을 들어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그것을 지키기를 힘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모세 온유한 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온유한 자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내 뜻을 가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생각을 감출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선하게 인도해 주실 뿐 아니라 이 땅의 주인이 되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주역이 되도록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인정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믿읍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소리를 줄입시다. 우리의 생각을 죽입시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온유한 마음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온유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단순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감추고 죽이는
진정한 온유를 소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평생 의지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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