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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2일 주일] 충성된 종의 완성


충성된 종의 완성

눅17:7-10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신학교에서 발행하는 학보사 기자노릇을 3년간 하여습니다. 제가 그 학보사에 들어가 몇 달 되지 않은 수습기자로 있었을 때 그 때 편집장을 지낸 대학원 학생이 일면 톱기사의 제목으로 <엘리트가 몰려온다> 라고 제목을 부치고는 기사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학 같은 좋은 대학의 졸업생들이 신학교로 많이 몰려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평가도 하였습니다. 그런 학생이 많아지니까 신학교는 좋아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포에 대한 그래프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내보내면서 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적잖은 고민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신학교의 기치관은 단순히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항하여 그것이 아니라고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죄책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트들은 많이 몰려왔지만 그리고 그들이 훗날 목사가 되었지만 한국 교회는 사회적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때 함께 신문을 만든 사람으로서 아직까지 많은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나 다 그 공동체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모임이나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각각 다릅니다. 예를 들면 판매회사는 영업을 잘 해 돈을 잘 버는 사람을 유능한 사원이라 할 것입니다. 하이테크 회사에서는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을 좋아할 것이고 병원에서는 병을 잘 고치는 의사를 좋아할 것입니다. 그저 착하고 남들이 시키는 일만 잘 한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그 사람을 우주선에 태울 수는 없는 것이고 청년들을 무척 좋아한다고 대학 강단에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단체나 모임은 그 모임이나 단체에 따라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그 일에 잘 맞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여러분 이 문제에 대하여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사람은 말 할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라는 독특한 공동체를 잘 모르고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하나님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시면서 그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에 대하여 즉 요즘 우리들이 관심 갖고 있는 것으로 사람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를 보면 어른들의 자아상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어른들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데 어른들은 친구를 사귀면 이런 것만 물어 본다고 말합니다. 「그 아이 집은 얼마나 크니?」 「아버지는 뭘 하시니?」
뭘 말합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얼마나 소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느냐?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시는 것뿐이지 다른 기준으로는 사람을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유익한 종 무익한 종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무익한 종과 유익한 종을 구분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입장에서 유익한 종 무익한 종을 구분하여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꺼번에 잘 비교되어 나오는 곳이 바로 잠언입니다. 잠언에서는 무익한 종과 유익한 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잠언10:26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게으른 자는 그 주인에게 눈에 연기 같고 이에 초 같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모닥불을 피울 때 혹은 바비큐를 하기 위해 불을 지필 때 그 연기가 눈에 들어간 적이 있으십니까? 참으로 괴롭습니다.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눈에서 연실 눈물이 납니다.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것이 게으른 종의 모습이라 성경은 말합니다.

2000년도로 기억이 됩니다. 봉사하던 교회에서 북한으로 수수쌀 식량을 보내는 일 때문에 연길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 장로님 몇 분과 동행을 하였는데 장로님들께서는 연길에 진달래라고 하는 맛있는 냉면 집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먹으러 갔었습니다. 식당에 가니 식당은 참 컸었는데도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냉면을 주문하고 한참을 있으니까 정말 먹음직스런 냉면이 나왔습니다. 저는 늘 하던 대로 테이블 중앙에 있는 식초를 뿌린 다음에 냉면을 잘 섞었는데 주위의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냉면을 잘 섞은 다음 그 먹음직스런 냉면을 한 입에 넣는 순간 저는 너무 시어서 그 냉면을 먹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테이블 중앙에 있던 것은 식초가 아니고 빙초산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직 중국에는 식초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서 빙초산을 먹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빙초산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가 너무 시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무익한 종은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잠언에서 유익한 종에 대한 설명도 함께 해 주고 있습니다.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마치 그를 보낸 이에게 추수하는 날에 얼음생수 같이 마음까지 시원케 해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분명히 구분하고 계십니다. 게으른 종 충성된 종으로 구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디에 포함되고 싶으십니까? 당연히 충성된 종일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께로부터 게으른 종이라고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충성된 종으로 평가를 내리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막연히 충성된 종이라고 한다면 일을 많이 열심히 하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밑은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 해 밤을 새워서 일을 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생각입니다. 내가 종이고 하나님께서 주인이라고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주인인가 그것쯤은 알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그 눈치는 갖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하나님의 일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제일 큰 실수는 바로 자기들이 하나님을 돕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고 자신들은 그래서 하나님을 도와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눅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돕고 있다고 생각한 반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움이 없어도 돌들을 갖고도 일할 수 있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즉 나의 충성이 하나님께 혜택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나의 충성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충성이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들에게 그 고백 듣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코끼리가 체중계에 올라갔습니다. 체중계의 바늘이 몇 바퀴 돌다가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코끼리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코끼리가 난감해 하고 있는 그 때 코끼리 등 뒤에 있던 개미 한 마리가 코끼리의 귀 속으로 들어가 코끼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끼리야 너하고 나 때문에 치중계가 고장이 났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도움이 없으면 하나님은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마디의 고백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해마다 정초가 되거나 아니면 어떤 큰일을 치를 때 일본 사람들은 달마에 눈을 그리는 작업들을 합니다. 「だるまに目を入れる」 라는 말을 우리는 압니다. 달마 인형에 눈을 그려 넣는 것입니다. 완성되지 않은 달마 인형에 눈을 그려 넣음으로써 뭣인가 완성을 의미하는 그런 의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봉사를 하는 우리에게도 충성된 종으로서의 완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고백입니다.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우리의 시간과 헌신과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질의 십일조를 강조하고 시간의 십일조를 강조합니다. 우리의 노력의 십일조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우리의 비른 고백을 하나님께서는 더욱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능력이시고 나는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나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믿음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본문도 사도들이 예수님께 참된 믿음을 알려 달라고 하는 질문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눅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믿음을 달라고 하는 예수님께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즉 믿음의 선장은 이 고백으로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다른 공동체의 가치관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다른 가치관으로 교회를 생각하고 봉사하다 보면 교회는 좋아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세상의 가치관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교회에 세상의 가치관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교회에 오면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유능한 사람이 오면 교회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봉사라도 한다면 교회는 많이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봉사의 완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신임 집사님을 임명하였고 또 한국에서 임영수 목사님을 모시고 제직의 자세와 역할에 대하여 좋은 수련회를 하였습니다. 모두가 참 좋은 시간을 가져 함께 기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또 오늘은 봉사자들을 임명합니다. 한 해 동안 일 할 구역장들과 성가대원 찬양대원 그리고 통역 봉사자등 봉사자들을 새롭게 임명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가대원이라면 노래에 소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구역장이라면 부지런하고 열심히 구역식구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통역의 봉자사라고 한다면 일본어와 한국어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만 있다면 봉사는 잘 할 수 있어도 완성은 안 됩니다. 충성된 종으로서 완성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려 한다면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무익합니다.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여 충성된 종으로서의 인정을 받는 한 해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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